
불법 마약류 이른바 '물뽕'(GHB)은 몸에 남는 시간이 짧아 사후 추적이 어렵다. 술이나 음료에 몰래 탄 물뽕을 섭취한 뒤 다음날에 피해를 인지하더라도 이미 소변으로 배출돼 검출되지 않는다는 얘기다.
뉴시스 보도에 따르면,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칼을 빼 들었다. 물뽕이 머리카락이나 소변에 아주 극소량만 남아있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민감도로 검출해 내는 기술을 개발한다.
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물뽕 불법 투약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검출법 및 시약 마련 필요성을 제기했다. 식약처 마약정책과는 지난 25일 의원실을 찾아 GHB 관리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밝혔다.
GHB는 백색 분말 또는 액체의 형태로 음료에 몇 방울 희석해 복용하면 10~15분 내 약물효과가 나타나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. 복용후 12시간이 지나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.
대사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소변으로 배출되는 GHB 양도 2% 미만으로 적어 검출이 어렵다.
또한 GHB 대사체는 체내에서도 생성되기 때문에 외부에서 투여된 것인지, 몸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.
이 같은 특성 때문에 최근 5년 동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GHB를 검출한 사례는 2021년 단 두 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.
정부의 우선 대책은 사전에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다. 현재 경찰청 주도로 술·음료 등에 불법 혼입된 GHB를 검출할 수 있는 휴대용 키트가 개발돼 판매되고 있다.
민간 업체에서도 매니큐어처럼 손톱에 스티커로 붙일 수 있는 간이 키트가 개발돼 연내 판매될 예정이다. 일반 술에는 색이 변하지 않던 스티커가 GHB가 1g가량 포함된 술에 닿자마자 즉시 빨간색으로 변했다.
강백원 식약처 마약안전기획관은 "간이 키트는 객관적인 증거능력이 없어 모발 등 정밀분석 전에 1차 판단 자료로 활용된다"며 "이것 역시 피해자가 이성이 있을 때 (대처)가능한 것"이라고 전했다.
사후 대처를 강화하기 위해 식약처가 나섰다. 식약처는 내년부터 GHB가 아주 적은 양이더라도 소변이나 모발에서 검출할 수 있는 정밀 분석법을 개발한다. 2027년까지 완성할 계획이다.
이번 개발의 핵심은 GHB 자체뿐 아니라 몸에서 분해되며 생기는 대사체까지 찾아내는 데 있다. 외부에서 투약된 물질인지 판별하기 위해선 대사체를 검출하는 것이 중요하다.
식약처는 이미 200여종의 마약류를 동시에 분석하는 기법을 가지고 있으며 국과수와 공유 중이다. 이번 개발을 통해 GHB와 그 대사체를 기존보다 100배 더 높은 민감도로 검출할 수 있도록 고도화할 예정이다.
특히 모발에서 GHB 및 대사체를 검출하는 미량 분석법을 개발할 예정으로, 전 세계에서 이런 시험법 개발은 식약처가 최초다.
소변에서는 GHB가 약 12시간이면 모두 배출되지만, 모발에서는 3~6개월까지 남아있어 검출 기간이 길다. 다만 모발에 잔존하는 양이 극히 적은 탓에 이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. 전 세계적으로도 해당 기술은 아직 부재한 상황이다.
강 마약안전기획관은 "모발 시료를 이용한 미량 분석법 개발을 완료하면 유엔으로 확산시켜, 국제 기준 조화를 선도할 것"이라고 전했다.
식약처는 유엔마약범죄사무소(UNODC)와 마약류 의존성 평가 국제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바 있는데, 이와 같이 국제 표준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. 국제 가이드라인은 내달 공개된다.
서 의원은 "피해자가 죽을만큼 저항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죄가 되는 '강간 사각지대'를 없애기 위해서는 물뽕 검출법 마련이 시급하다"고 말했다.